우리나라의 드라마 중에서 성공한 드라마는 대부분 실존철학적인 성찰을 갖은 드라마가 작품성을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가장 훌륭한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나의 아저씨>의 경우도 그런 실존철학적인 스토리와 대사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던 쿠엘료의 극찬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실존철학적인 냄새가 짙게 밴 <동백꽃 필 무렵>도 마찬가지로 흥행에 성공했었다.
모두가 익숙한 객관사회에서 떨어져 인간이 객관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따르는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하여 생각하고 고민하는 모습들이 대중의 공감을 받는 것이다.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은 사극에서 처음으로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사극에서는 역사적 사실을 중시한 정치적이고 영웅적인 역사적 인물에만 초점을 맞추었었다. 그러나 역사를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무수한 사람들도 역사를 만든 것이다. 역사에 많이 기록된 수많은 전쟁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고생을 했겠는가? 그러나 역사에 남겨진 것은 그 전쟁에서 지휘자와 장수들 뿐이지 성벽을 기어오르다 돌에 맞고 굴러 떨어지거나 창에 찔려서 죽은 병졸의 애닯은 이야기는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대부분은 그렇게 이름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인 것이다.
<옷소매 붉은 끝동>에 나오는 궁녀들의 모습은 이전의 사극들에서 나왔던 궁녀들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들은 왕의 후궁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들도 그들의 삶을 위해서 노력한다. 역사속의 정순황후는 정조와 치열한 정치투쟁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치를 떠나서 대비가 궁궐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여성으로 묘사한다. 다만 홍국영만이 자신의 누이를 왕의 후궁으로 만들고 객관사회가 요구하는 지위와 권력을 탐하다가 몰락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만 극에서 보여주고 싶은 강한 주제는 지위나 권력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 지를 탐구하는 자와 그것을 방해하는 현실세계와의 갈등을 그렸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을 얻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객관세계가 요구하는 압력을 거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지 못하고 순종하거나, 또는 나를 제외한 모든 세계가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고 나 자신을 찾는 길을 가거나, 또는 그 둘을 타협하면서 갈등하며 살아가거나 하고 있다. 때때로 우리는 철학적 성찰로서 실존에 가까이 접근할 수도 있고 또는 어떤 한계상황에서 우리는 실존에 가깝게 다가가기도 한다. 한계상황은 우리가 우리자신을 포기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상황을 말한다.
야스퍼스의 철학에 있는 구절이다. ‘그래서 우리가 한계상황에서 의미 있게 반응하는 것은 한계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계획과 숙고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완전한 다른 활동, 즉 우리 안에서의 가능 실존의 생성을 통해서이다. 우리는 눈을 뜨고 한계상황에 들어감으로써 우리 자신이 된다.’
흔히 우리는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본성이 나타난다고 한다. 가끔 우리는 주변에서 지독한 고통을 겪는 일을 당할 경우에 종교인이 되는 경우를 본다. 그리고 종교에서 강조하는 것은 현세적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다른 것을 말한다. 기독교에서도 불교에서도 현실을 초월하는 어떤 것을 말한다. 그러나 꼭 어떤 현실적으로 묘사된 천국, 지옥, 연옥, 천당 등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실존의 모습이 바로 우리인 것이다. 유행하고 인기 있는 드라마들을 보면 이미 우리는 실존철학적 생각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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