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대하여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의견은 객관적이기 어렵다. 어려서부터 익숙해진 습관에 의하여 그것이 당연한 것이다. 마치 그림이 그려지기 전의 백지와 같은 것이다. 어떤 그림이 있어야 다른 그림과 비교할 수 있지 백지 그 자체는 바탕화면이기 때문에 무엇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음식이 그렇다.
우리가 음식을 평할 때 맛이 있다 없다고 평가할 뿐이지 그것을 다른 음식과 비교할 수 없다. 다른 나라 음식과 우리나라 음식을 비교하려면 다른 나라 음식을 전부 경험해보아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각국의 음식은 서로 비교하고 평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음식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거나 다른 나라 음식이 절대적으로 우수하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음식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하는 것이 초점이다. 만일 외국에 나가서 또는 외국인이 그 음식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보편성이 있는 음식이 된다. 비교적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곳에서 이런 보편적인 음식이 나타나게 된다.
고립된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음식들이 많이 발달하게 된다. 일본의 음식이 그런 경향을 많이 보인다. 또한 중국의 음식도 지역에 따라서 고립된 경향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반면에 우리나라 음식은 서구의 사람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향은 최근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서구의 음식은 귀족적이기 때문에 음식을 서빙하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 음식은 우리가 해서 먹는 것이다. 서구의 음식이 음식을 만들고 서비스를 하는 사람과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구분되는 반면 우리나라 음식은 만들고 서비스하는 사람과 음식을 먹는 사람이 동일한 사람이다.
요즘 외국에서 유행한다는 코리언 바비큐를 외국인들이 신기하게 느끼는 것은 먹는 사람이 조리와 서빙을 하면서 먹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서비스를 받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고기를 굽고 잘라서 먹는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 여러 사람들과의 협동으로 상차림을 한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음식은 공동의 작업이 아닌 오로지 나 개인에게 서비스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한식은 문화충격인 것이다.
이렇게 음식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음식이 보편적으로 외국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는 의문이었다. 물론 특정한 외국인들이 한국의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일부 있을 수 있으나 보편적으로 우리나라의 음식이 전 세계적으로 퍼질 수 있는가는 의문을 사항이었다.
오랫동안 한국음식이 외국에 소개되었지만 일본이나 중국의 음식에 비하여 고립되고 이해되지 않는 음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나라 음식이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할 기회가 되었다. 본의 아니게 우리나라 음식이 세계인에게 소개될 기회가 생겼다.
물론 과거에도 우리나라를 여행한 사람들에 의하여 음식이 세계인에게 경험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인원은 전 세계적
으로 보면 소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보편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는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전 세계에 한국의 드라마가 급격히 확대되어 관심도가 비약적으로 늘었다.
당장은 라면 만두 같은 인스턴트 식품의 수요가 늘고 있으나 곧 우리음식이 전반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음식이 가진 보편성에 있다. 우리는 우리음식의 보편성을 평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외국인에 우리음식이 노출되는 횟수가 늘어나자 우리 음식이 세계에 먹힐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물론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은 이런 경향을 더욱 확산시켰다.
한식이 보편적인 음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알려진 음식으로는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중국, 일본 음식이 있었다. 각 음식들의 문화적 특징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음식은 비교적 대중의 음식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프랑스 요리는 귀족적인 음식이고 중국음식 또한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음식은 의도적으로 미화된 특이한 음식으로 평가된다.
음식은 하루아침에 나올 수 없다. 적어도 천년이상의 연속성을 가지고 숙성되어야 음식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으며 그 기간 중에 갖가지 역사적 우여곡절이 스며들고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유럽의 음식들이 비교적 귀족들을 위한 음식으로 평가받는 것은 유럽의 역사가 귀족을 위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의 생활을 위하여 사회가 형성된 것이 아니고 귀족들에 의하여 구성된 사회로 그들을 위한 음식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다.
우리의 음식은 많은 부분 일반 평민들을 위한 음식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왕족이나 양반들을 위한 음식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일반 백성들이 잘 먹고 살아야 사회가 안정될 수 있다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흉년이 들거나 사회적 기근이 발생하면 왕의 덕이 부족하여 나타난 일이라고 치부되어 왕들이 일반 백성의 안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유럽의 역사는 일부의 기사와 귀족들이 전쟁으로 성을 차지하고 나머지 시민들은 그 귀족과 기사들을 위한 사회가 되었다. 우리나라 음식이 농경사회를 바탕으로 한 평민들의 음식인 반면 유럽의 음식은 귀족적인 음식이 되었다. 중국의 음식은 두가지의 혼합형이고 일본의 음식들은 유럽형에 더 가깝다.
우리나라 음식이 세계의 음식에 보편적인 음식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전 세계의 음식문화에 혁명적인 일이 예고되고 있다. 저렴하고 맛이 좋은 음식을 추구하는 우리 음식이 전 세계에서 받아들여진다면 엄청난 시장이 열리게 된다. 전 세계인이 더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회가 열린다는 뜻이다. 음식문화의 평등주의와 민주주의가 비로소 실현될 계기가 되는 현상이다. 이것이 확산되면 우리 경제나 사회가 더할 수 없는 큰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음식은 세상을 바꾼다.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이 세계의 표준이 되는 것이다. 세계의 패권은 라이프 스타일의 전쟁이다. 세계의 모든 강국들은 모든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사회를 만들 때 비로소 완성되었다. 경제의 규모나 군사력이 세계의 패권을 가늠하는 것이 아닌 가고 싶고 경험하고 싶은 사회가 되는 것이 핵심이다. 음식은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이다.
음식을 만들려면 도구가 필요하고 재료가 필요하고 사람이 필요하다. 세계의 사람들이 우리나라 음식을 만들려면 상상하지도 못하는 많은 인프라가 필요하다. 우리가 사는데 필요한 의식주 중에서 옷과 주거의 형태는 이미 고정된 표준화된 모델이고 어느 나라나 적용되어있다.
그러나 음식만큼은 아직도 세계화되지 못하고 여러 가지 대안들이 경쟁하고 있다. 한때는 미국식 인스턴트식품이 전 세계를 휩쓴 적도 있고 중국식과 일본식도 어떤 형태로든 세계화의 길을 걸었으나 보편적인 형태가 아닌 특별한 음식의 범주에 속했다. 그러나 우리 음식은 세계인이 항상 먹을 수 있는 보편적이고 평등하고 민주적인 형태의 음식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음식의 세계적 확산은 그들의 생각이 변화되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일종의 사고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것이다. 우리 음식이 세계인의 생각과 습관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흥미롭게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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