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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미얀마 사태를 보는 눈

by eaee 2021.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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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사태를 보는 눈>


미얀마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제3자의 눈이라 한가하기만 할 것이다. 미얀마 현지인들의 심정은 얼마나 절실하고 초조하겠는가? 그러나 어쩌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없다. 세상의 모든 국가를 구제할 수는 없다. 아직도 세계는 미개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잔인한 학살과 만행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도 막 그런 사회를 벗어난 수준이다. 우리 사회가 안정된 것이 몇 십 년이 되지 않는다. 수 백 년을 지켜온 안정된 사회도 아니다. 과학기술을 이제야 습득하고 그것을 인간을 사랑하는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사람을 이롭게 쓰고자하는 생각을 가진 것이 이제 시작인 사회이다. 그런데 어떻게 먼 이웃나라를 구제할 수 있겠는가. 다만 우리가 기원하는 바는 희생을 치러도 지켜야 될 가치는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지금 승리하면 한국과 같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아시아 국가 중에서 우리만큼 정신적 지주가 되어줄 나라들도 없다. 


세계의 정신의 밑바탕은 휴머니즘이다. 정치체제나 종교보다도 앞선 정의는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휴머니즘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이 부정되는 어떤 사상이나 종교도 결국에는 거부되었다. 인간의 쟁투에서 남을 희생시키려는 욕구는 언제나 강렬하여 역사의 오욕이 계속되었다. 인간사 한 치의 진전도 없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점차 아주 느린 속도로 그런 생각들이 전파되고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의 세계는 세계의 시민이 서로를 도와주는 세상으로 가게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적은 이득을 위하여 남을 희생시키려는 동물적 욕구를 가진 집단에 의하여 수시로 방해받고 저항되면서 진행될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많은 진보를 이루었다. 그 진보가 우리 사회가 고생을 겪고 이룬 것이지만 그것이 또한 언제나 방해받고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았고 서구의 사회조차도 역사의 역류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일본계 미국 정치학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유민주주의가 여전히 보편적인 힘을 갖지 못하는 이유, 혹은 일단 자유민주주의가 힘을 얻어도 안정을 유지할 수 없는 이유는 결국 국가와 민족이 완전히 조화하지 못한 데 있다. 국가는 어떤 목적을 가진 정치적 창조물인데 반해 민족은 국가의 생성 이전부터 존재한 도덕적 공동체이다. 즉 민족은 선과 악의, 성(聖)과 속(俗)의 특질에 관한 공통의 신념을 갖고 있는 공동체인 것이다...국가는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반면 민족은 문화에 의해 움직인다. 문화가 자유민주주의적인 것, 즉 참여, 합리성, 세속성, 유동성, 배려, 관용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이 민주주의적 가치가 궁극적인 인간의 덕과 선을 결정하는 습관으로 작용해야만 가능하다.”


결국 민주주의는 ‘문화’라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이 민주화될 수 없는 이유도 문화 때문이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 민주적일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문화가 바뀌어야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민주주의는 계몽시대라는 문화적 변혁기를 거치고 난 제도적 산물이다. 계몽시대를 거치지 않은 아시아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데는 머나먼 길이 남아있다. 중국이 아무리 경제규모가 커져도 이성적으로 지배된다는 계몽시대를 겪지 못한다면 후진국으로 멸망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모든 나라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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