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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로마를 꿈꾸며>
기원전 270년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고 강한 국가로 일어서기 시작했다. 기원부터 500년이 넘게 걸렸다. 당시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선진국이었으며, 뒤 이어서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이 있었다. 그러나 숫한 고난을 이겨내며 일어서기 시작하였다. 로마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우리나라도 이제 사람들이 몰려드는 나라로 가야하지 않을까.
당시에 대하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서 나오는 묘사를 인용했다.
이하 출처 : 로마인 이야기 1.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가 융성한 요인에 대해, 세 명의 그리스인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는 종교에 관한 로마인의 사고방식이 그 요인이라고 말했다. 인간을 계율로 다스리기보다 인간을 수호하는 형태의 종교인 로마 종교에는 광신적인 경향이 전혀 없고, 그래서 다른 민족과도 대립관계보다는 내포관계로 나아가기가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종교를 인정한다는 것은 다른 민족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이리라.
정치 지도자이기도 했던 폴리비오스는 로마의 독특한 정치체제의 확립이 로마가 융성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각각 공동체 일부의 이익만을 대표하는 경향이 있는 왕정과 귀족정과 민주정이라는 정치체제를 고집하지 않고, 집정관 제도를 통해 왕정의 장점을 살리고, 원로원 제도를 통해 귀족정의 장점을 살리고, 민회를 통해 민주정의 장점을 살린 로마 공화정의 독자적인 정치체제에 융성의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확립함으로써, 로마는 국내의 대립관계를 해소하고 거국일치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플루타르코스는 패자까지 포용하여 동화시키는 로마인의 생활 방식이야말로 로마가 융성한 요인이라고 단언했다. 플루타르코스의 모국인 그리스에서는 그리스인이 아닌 민족을 바르바로이(야만인)라고 불렀을 뿐만 아니라, 같은 그리스인 사이에서도 스파르타 출신이 아테네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을 불가능했다.
반면에 로마에서는 어떠했는가. 같은 라틴족에 대해서는 출신지를 따지지 않고 시민권을 부여했으며, 적국 출신인 경우는 일정 기간 로마에 거주하기만 하면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다만, 로마인을 이기지 않고 관용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이기고 나서 관용을 베푸는 식이었다.
이 세 사람의 지적은 모두 옳은 것처럼 여겨진다. 로마가 융성한 요인을 찾는다면, 이 세 가지를 전부 들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디오니시오스가 거론한 종교, 폴리비오스가 지적한 정치체제, 플루타르코스가 말한 포용력은 모두 고대에는 이례적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로마인의 개방적인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성에서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이나 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이 이들 민족보다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개방적인 성향이 아닐까. 로마인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이 개방성이 아닐까......(중략)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먼 옛날의 로마를 동경과 경의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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